2011-04-07

사람을 만나는 것


이 달의 표지모델 B군

사진설명 : 주변부에 음식점 스티커판, 쓰레기통, 에어컨 실외기가 있고, 봄에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을남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지인 B군입니다. 이 달의 블로그 표지모델로 선정하였습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남에 따른 사교 활동과는 별개로, 사람을 믿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제 에스프레소와 드립커피의 차이도 압니다! 제 친구가 쓸데없이 아는 게 많다고 칭찬해 줄 정도로 별 쓸모는 없지만 잡담거리로 써먹을 이야기도 좀 알아요! 하다못해 제사상 차리는 법과 지방 쓰는 법도 알고, 우리나라의 작명 기본 원칙도 약간 알고 있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의 태도도 몇 년 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어요. 요즘도 사람을 대하는 매너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개선이 있었지요. 적어도 저쪽과 절연을 할 때, 최소한의 이유는 설명해 주니까요 ㅋㅋ

  하지만 뭐랄까, '신뢰'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게 예전보다 쉽지가 않네요. 아이들은 반나절만 같이 놀면 헤어질 때 정말 서럽게 울기도 할 정도로 친해지고, 중고등학생들은 학기가 시작되고 한두 달, 길어봤자 한 학기가 지나면 '우리가 진짜 친구다' 드립을 치곤 하죠. 반면 스무 살이 넘고 나서, 저의 경우에는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는 데까지 몇 해가 걸리는 경우가 많았던 듯해요.

  상대방을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어울리다 보면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을 주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약간의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느낌과도 비슷하네요. 같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이랄까요, 아쉬움은 들지만 안타까움은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요…… 뭐 제가 좀 인정머리 없는 성격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ㅋㅋ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두 생명체가 만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이 살아온 인생과 다른 인간이 겪어온 삶의 역사가 만나잖아요. 별개였던 두 개의 소우주가 만나는 것이죠. 혹자는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경직되고 스스로 가진 삶의 패턴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말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세월이 쌓이며 서로 가진 고유의 역사도 길어지기 때문에 그것이 용해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저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저 쪽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에요. 작은 물통보다 큰 물통에 잉크를 풀면 퍼지는 시간이 그만큼 더 오래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게다가 다른 역사를 걸어온 사람들은 그만큼 나름의 주관과 스스로 만든 규칙이 생기게 되잖아요. 어릴 때는 상대적으로 그게 적으니 상대방의 단점(이라기보다 나에게 거슬리는 부분)도 적게 존재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초중고교 동창들이 하는 바보짓(또는 병신짓, 흔히 뻘짓)은 그것이 이미 수용된 상태에서 개성이 굳어진 것이라 그 뒤에 만난 다른 사람들에 비교하여 그 수용 폭이 넓은 것 같아요 ㅋ 법칙의 예외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흔히 불알친구라고 불리는 애들한테는 더 관대해지더라고요 ㅋㅋㅋ 이래서 지연 학연 드립이 없어지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개인 차원에서는 문제 될 게 없으니 괜찮지만요 ㅋ

  뭐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제가 한 백 살 정도 먹은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 아직 20대입니다 ㅇㅇ……  그냥 제가 짧다면 짧고, 나름 길다면 긴 삶을 살아오면서 이러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뿐이에요. 며칠 전 친구들이랑 별생각 없이 점심을 먹었는데, 어찌어찌 흐름을 타고 6만원을 혼자 물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절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일은 이 글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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