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에 대한 단상


  18대 총선이 끝나고 열흘이 지났습니다. 비례대표까지 합쳐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어서 과반수를 확보한 원내 1당이 되었고, 그 뒤로 통합민주당이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순으로 각각 의석을 확보했네요. 앞으로 무소속 의원 25명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겠지만,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지금과 같은 정치구조를 뒤흔드는 변화는 있을 수 없을 듯이 보입니다.


투표함 이미지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지난 열흘간 많은 분석이 각종 매체에서 나왔습니다. 46%의 낮은 선거율, 20대의 저조한 참여(이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비판이라는 이야기도 많더군요), 수도권에서의 한나라당 강세, 여전히 보이는 지역별 특정정당 편중지지 현상 등 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석의 결과나, 해당 기사나 칼럼을 보고 의견을 개진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주로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저조한 선거참여에 대한 비판과, 서울 특정지역 뉴타운 공약에 따른 시민들의 특정정당 지지, 그중에서도 아파트단지의 몰표현상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보였습니다.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독재국가로의 회귀라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의견에 동의를 표시하며 기사들을 죽 읽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18대 총선결과는 확실히 우리나라 민주주의 의식이 더욱 발전했음을 보여준다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단순한 정당의 득표 결과 이상의 변화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에서는 다른 때보다 자신의 이익에 기초한 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과거 자주 보이던 경상도는 신한국당, 전라도는 민주당, 충청도는 자민련으로 나뉘어 '우리 지역당을 뽑아야지'라던 지역 이기주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약해졌습니다. 대신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후보를 뽑는 모습이 새로이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주민, 특히 그중에서도 강북지역 아파트단지에서 나타난 몰표현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올해 초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강북지역 아파트의 상승세를 지속시켜 줄 것이라 기대되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이와 같은 현상은 과거 선거구도에서는 대두되지 않던 모습입니다. 각 후보들도 뉴타운 공약(이라 쓰고 월척 낚시 떡밥이라 읽히는)으로 이런 분위기에 화답-_-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번 선거결과의 이변 중 하나라 불리는 사천의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 당선에서도 나타납니다. '진보진영의 위대한 승리'와 '서울 주민들의 이기심'이 같은 선상에 놓인 것에 불쾌해하실 분들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에 이 둘은 같은 현상의 발로 결과입니다. 서울은 자신의 경제적 계급의 이익인 아파트값 상승을 극대화시켜 줄 후보를 고른 것이고, 사천은 사천지역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것으로 보이는 후보를 고른 것뿐입니다.
  단순히 이와 같은 사실만을 두고 보자면 지역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철저하게 매몰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드디어 지역-정당의 허구적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이익이던지 가치관이던지 어떤 것에 기초를 두었던지간에, 이제 사람들은 정당의 이미지와 자신의 경제적 위치에 고려한 선거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직까지 그 고려라는 것이 피상적인 정당의 이미지에 함몰되어 있고, 개인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서글픈 사실을 제외하면 이는 분명 엄청난 변화입니다.
  물론 위의 총선결과에서 보이듯이 아직 변화가 없는 지역도 많습니다. 위에서 계속 언급한 개인의 의식 문제도 보이고요. 하지만 지역이라는 허구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기 시작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번 선거결과는 예전보다 발전된 우리나라의 정치의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 단상이라고 쓰고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_- 사실 더 쓰고 싶은 내용이 더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생각대로 함부로 글을 썼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갈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적당한 분량인 듯해서 급마무리에 들어가야겠습니다 ㅋ

p.s. 글을 다 쓰고 보니 무언가 설명이 부족한 듯하여 사족을 하나 붙여봅니다. 위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니 자신의 이익에 기초한 선거가 민주주의의 발전된 형태라고 제시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저는 이와 같은 현상이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계급의식을 좀 더 명확히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라 생각하여 위와 같은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죄송하지만 계급의식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봐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쓰기에는 너무 길고, 다른 분들이 훨씬 훌륭하게 정리해 주신 글이 인터넷에 많이 있습니다.) 물론 서울-비서울, 정규직-비정규직 등 명확한 계급의식을 갖추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허구가 아직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왜곡된 계급의식은 과거의 왜곡된 의식에 비하여 보면 분명 사회경제적 배경에 기초한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것이 최초로 강하게 반영된 이번 총선이 상대적으로 발달된 민주주의 의식을 반영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결과가 좀 안타까운 면은 있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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