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9일 촛불집회 후기
5월 29일 오후 4시, 드디어 쇠고기 수입에 관한 장관 고시가 발표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동안 '지금 여론이 이런데, 설마 발표하겠어?'라고 애써 자신을 속이며 촛불문화제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학원 시간도 저녁이고, 거기까지 가는 일도 귀찮게 생각되어서 일부러 좋은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제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더군요.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하여!라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한 부조리를 견딜 수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오늘 집회에 나가고 나서야 그동안 양심의 가책으로 달지 못하고 있던 촛불을 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광화문으로 갔는데, 친구가 시청 앞에서 문화제가 있다고 해서 시청으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하니 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이미 많은 분들께서 촛불을 들고 앉아계셨습니다. 잔디광장에는 이미 앉을자리가 없었고, 그 주위에도 많은 분들이 서 계시더군요. 광장 가장자리에 마련된 연단에는 많은 분들이 발언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중 성함을 알고 있는 분은 강기갑 의원님밖에 없었습니다. 단식에 들어가신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셔서 '연설 끝나면 배가 더 고프시겠다.'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장에서의 '문화제'는 이미 그때부터 문화제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습니다. 일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연설자는 확성기를 사용하여 발언을 하고 있었으니 전가의 보도인 집시법에 따르면 이미 '불법시위'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겠지요. 이걸 두고 불법집회는 엄단을……이라고 하실 분들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__)(--)
그런데 연단에서 연설이 마무리되고 나서 약간 분위기가 산만해졌었습니다. 주로 대학 단과대별로 오신 분들이 각 단과대 깃발을 들고일어나서 나가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8시 반도 넘었고 집회도 해산하는 분위기라 이제 집에 가려나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들이 차가 다니는 거리로 뛰어나가시더라고요. '오옷 역시 아직 단과대 깃발의 포스는 죽지 않았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b (사실 그분들이 집에 가는 줄 알았을 때 쪼끔 실망스러운 생각도 들었거든요 ㅋ) 그 학생분들의 용감한 첫발을 시작으로 다른 분들께서도 본격적으로 거리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광장에 있던 분들로만 출발했던 행진 참여자는 청계천 인근, 을지로, 종각, 종로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시위 안내방송을 하던 방송차 근처에 있어서 뒤쪽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계시나 몰랐었습니다. 그러데 종로에서 친구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여 한 6~7분간 밖에서 혼자 기다리는데, 그 시간 동안 6차선 도로와 인도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계속 행진을 하며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 언론 기사를 보니 참여자가 9천명·만명이라고 구라를거짓말을 하는데, 거기서 봤을 때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삼만명은 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진 도중 '아 이제는 도저히 진압이 불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ㅋ 지금 오만명이라는 소리도 나오는데, 정확한 숫자는 아침이 되어야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호도 상당히 격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시 철회 협상 무효', '연행자를 석방하라', '민주시민 함께해요', '이명박은 물러나라'등의 구호가 나왔습니다. 우리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께서 얼마나 행동을 잘못하셨으면 취임 100일도 안돼서 이런 구호를 듣게 되셨을까요. 태국의 탁신이나 페루의 후지모리도 초반에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참… 이 좋은 목요일 저녁거리로 나오게 된 제 자신과, 작금의 현실이 한탄스러웠습니다. 아, 그래도 중간에 부르던 훌라송은 뭔가 재미있더군요(익숙한 음이었는데 원곡이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ㅋ).
행진의 분위기는 굉장히 평화로웠습니다. 정말 다양한 분들께서 같이 행진을 해 주셨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양복 입으신 형님 및 아저씨분들, '대통령 잘못 뽑았어'를 외치시며 걸어가시던 어르신 등 정말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오신 어머니도 보이시고, 특히 어떤 아가씨께서는 하이힐을 신고 행진을 하시더군요.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 인도에 계시던 다른 분들께서도 손을 흔들어 주시기도 하시고, 갑작스러운 도로 점거로 하염없이 기다리셔야 했던 여러 운전자분 및 버스 탑승객 분들도 항의를 하시거나 경적을 울리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행진의 취지에 공감을 해 주셔서인지, 이 상황에서 항의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분들의 얼굴을 보아서는 아무래도 전자 쪽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 뽀대 나는 예비군분들, 환호성을 받으시며 앞으로 뛰어나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 워커화 밖으로 바짓가랑이를 꼭 빼놓고 계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ㅋㅋ 그리고 한총련 학생들, 최근 몇 년 동안 반겨주는 곳도 많이 없고, 주로 달갑지 못한 시선을 받으셨을 텐데 오늘은 정말 박수 많이 받았습니다. 앞장서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요. 그리고 행진에 따른 교통 정체가 있었는데, 그것을 힘들게 정리해 주시던 교통경찰 여러분들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처럼 큰 충돌 없이 진행되던 거리시위는 광화문 앞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전경들이 광화문 사거리에 기대마로 도로를 봉쇄하고 인도를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거든요. 버스 가장자리에 전경들이 막고 있는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날까 걱정도 했'읍'니다만, 우리 예비역분들이 열심히 충돌을 막아주고 계시고 시민분들과 전경분 양쪽 모두 감정적으로 대응하시지는 않아서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부분에 엄청나게 운집해있던 방송용 카메라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후 남은 분들은 이제 이 앞에 앉아서 다시 집회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 함께하다 이제 집으로 갈 차편이 끊길 시간이 되어 귀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뭐랄까요, 평소에 방에서 보던 기사와 현장에서 받는 느낌은 전혀 달랐습니다. 단순히 몇 명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했다느니, 학생들이 많았다느니, 어떤 구호가 나왔다느니 등등의 소식을 글로만 접하는 것은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머리에만 알려주지 가슴에 알려주지는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오늘 고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더욱 커진 상태라 이것이 더욱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군요. 제발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께서도 비공개로라도 살짝 집회 현장 근처에서 성난 여론의 모습을 접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기대는 더 이상 하지도 않고 생각되지도 않기에, 저 현장에 또다시 나가야겠다는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해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 각하, 정말 고맙습니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각종 정치, 법, 사회, 환경, 의학에 대해 막대한 공부를 하게 해 주셔서 국민 계몽을 이끌어 내신 것도 모자라, 이제 19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시민들에게 당시의 위기감을 2008년의 현실 속에서 이렇게 체득하게 해 주시는군요. 당신은 정말 신화적인 인물로 남을 듯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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