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의 일화와 도의적 문제
은근히 더운 날이었지만, 다행히 바람이 꽤 불어줘서 상쾌하게 느껴지던 하루였습니다. 사실 상쾌하게 느끼기에는 좀 더웠던 듯합니다만,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시원하게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기분 좋은 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서 그에 대해 주절주절 글이나 써 볼까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평소 행실이 바르고 주어진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던 나치 독일 하의 관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독일이 전쟁을 벌이지 않고, 현재의 독일과 같이 평화로운 상태에 있었다면 모범적인 관료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모범적인 관료'라는 모습보다 '유대인 학살자'라는 이름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지요. 그 사람이 유대인 관리에 대한 실무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관료제라는 개념 하에서 훌륭한 관료란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된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 모범적인 관료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을 학살하라는 정책을 입안한 정치가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아돌프 아이히만은 정상적인 관료의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범으로 지정되어 '납치'에 가까운 연행을 당한 뒤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을까요. 위에서 내려온 정책을 거부하는 일이야말로 관료라는 위치에서 문제가 될 사항인데 말이죠. 간단히 나쁜 일을 한 사람이므로 죽어야 한다라는 논리만으로는 그의 억울한 듯한 사형선고가 일견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책임을 묻는다면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정책 결정이지, 그 정책이 집행되지 못한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히틀러 및 나치 독일의 정치인들에게 그 책임 소재가 있겠지요. 아이히만이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요(사실 법정에서 아이히만도 자신은 명령받은 것에 대한 의무를 다했을 뿐이고, 악의는 없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현대사회에서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를 배신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도의적 책임'이라고 하나요. 결국 명령에 따라 행동을 했다고는 해도,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따른 도의적인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이 되는군요.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제시한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작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고 정의하여 아이히만의 행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야 새벽에 광화문에서 일어난 일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서인지 해당 글의 댓글란에는 수많은 분들이 그에 대한 의견을 써 주셨더라고요. 새벽의 시위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남아있던 시민들이 잘못했다, 시민들을 과잉진압하던 전의경들에게 문제가 있다, 시민과 정부의 문제를 시위대와 전의경의 싸움으로 호도하지 말라는 말 등 많은 의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궁극적인 문제는 시민과 정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라는 말이 맞겠지요. 그러나 행정을 집행하는 분들께서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면, 도의적인 문제를 한번 고려해 보시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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