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일 촛불집회 후기


  지난 토요일 집에 일찍 들어왔다가 밤중에 일어났던 전의경의 만행을 보고 몸이 피곤했지만 다시 시청으로 나갔습니다. 친구와 저녁을 먹고 시청 앞 광장에 일찍 가보니 이미 많은 분들께서 나와 계셨습니다. 아직 행사는 없지만 여기저기 삼삼오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저와 친구도 거기서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단체인 '다함께'에서 팔고 있는 '맞불'이라는 간행물을 사 보았습니다.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서 알아보고자 봤는데, 국제사회주의 단체더군요. 뭐, 저도 관련 서적이나 수업, 토론 등으로 트로츠키주의나 제4 인터내셔널 등의 여러 내용을 공부해보았던 터라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0페이지에 800원을 받는 건 좀…… -_-; 여하튼 이 단체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아니므로 그냥 이쯤에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집회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이 시작되었습니다. 듣고 있다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정치인들을 질타하시는 여성분, 의료봉사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던 봉사대원분, 그리고 제일 인상깊었던 여학생 분의 발언까지 다들 훌륭하게 발언을 하셨습니다. 아 요즘 사람들은 다 말을 잘하는 것 같아요 ㅠㅠ

  그리고 우스운 사실 하나, 통합민주당에서 깃발 들고 참가하셨더군요. 깃발 수도 많았어요. 4개인가……. 그런데 국회의원 한분이 발언한다는걸 못하게 해서 삐졌나, 길거리 행진을 시작하자마자 금세 그 깃발들이 다 없어지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불법이라 못 오겠으면 애초에 오지를 말던가(서울광장에서부터 불법이죠 사실), 아예 어디처럼 불법시위대라고 비난을 하던가 하지 그게 뭔 추태입니까. 앞으로는 그냥 오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해가 지고 출발했던 다른 날과는 다르게, 밝을 때 거리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일찍 시위를 해야 전의경들이 노약자들을 쉽게 때리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물론 나중에 전경들 꼬락서니를 보니 이건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여하튼 시청에서 바로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까지는 평화롭게 '불법시위'를 하며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 행진
  이 행렬은 곧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있는 경찰버스와, 그 뒤에 대기하고 있던 전경에 의해 멈추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위 사진의 좌측 길로 가서 청와대 쪽으로 가 보려고도 했습니다만, 이미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은(골목길까지) 전경들이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화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모여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해질녘 광화문
  저녁 12시까지 이런 모습의 대치상태는 계속되었습니다. 시민들 중 일부가 전경 버스 위로 올라갔다 전경들이 따라 올라와 그 사람들을 내리는 과정에서 누군가 다쳤는지 구급차가 출동하는 모습도 보였고, 버스 위에 올라간 전경들이 많은 야유를 받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중간에 가끔 전경들 쪽으로 물병 등의 물건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위의 대부분 분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그런 분들은 자제시키는 분위기였습니다. 중간 어떤 할아버지께서 한복을 입고 버스 위에 올라가셨다 전경들에게 끌려내려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대치상태가 변하기 시작한 건 11시 이후였습니다. 전경 버스 중 일부를 사람들이 끌어내기도 했고, 갑자기 전경 측에서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버스를 끌어내니까 막으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소화기를 뿌리는 양이 지나치더군요. 게다가 집에 와서 보니 그걸 사람들에게 직접 뿌렸습니다. 뒤쪽에 있던 저도 숨 쉴 때 목이 따갑게 느껴졌었는데, 정말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촛불을 끄기 위해 소화기를 쓰는 건가요. -_-;; 또 비록 오늘은 쏘진 않았지만 버스 뒤로 당당히 물대포 발사부를 보여주며 빨리 해산하라고 경찰에서 친절히 방송해 주었습니다. 중간중간 버스 뒤에서 전경들이 방패로 바닥을 치면서 위협도 하더군요.

소화기 분사1

소화기 분사2
  그리고 사람이 줄어서 만 명 정도가 된 6월 2일 0시 40분쯤, 사거리의 세 방향에서 전경들이 시민들을 압박하며 사거리 가운데로 몰아넣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눈앞으로 전경 쪽에서 던진 물병이 휙 지나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온 힘을 다해 던지더군요. 전경들이 정말 위협적으로 느껴졌었습니다. 온통 검은 제복을 입고 방패로 바닥을 치면서 다가오는데, 눈빛이 아주 강렬하게 이글거리더군요. 전의경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일부' 전의경은 피해자일지도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전의경은 아마 시민들의 '불법시위'를 진압해야 할 귀찮은 반정부 분자 정도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라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합니다만 다른 분들이 찍으신 사진이 인터넷에 많으니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전의경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아요. -_-;;
  시민들이 '폭력경찰 물러가라',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위협적으로 해산 준비를 하던 전경은 결국 새벽 2시경 시위대를 돌파하며 시민들을 쫓아내 인도로 몰아붙이며 해산을 시작했습니다. 멋지더군요. 봉을 머리 위로 쳐들고 빙빙 돌리며 뛰어나오는 모습이.

진압 상황1

진압 상황2

진압 상황3
  불법시위는 엄단해야 한다며 정당성을 주장하실 현직 전의경 또는 그 관계자 분들에게 몇 마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제 시민들은 화염병, 쇠파이프, 각목, 보도블록과 같은 위협적인 무기를 든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저 시위가 현행법을 어긴 불법시위라고 해도 압도적인 무력 수단과 조직력을 지니고 있는 전경은 시위대를 평화적으로 해산해야만 합니다. 그게 당신들의 의무입니다. 불법주차를 했다고 차를 박살 내는 게 합법입니까? 불법시위를 했다고 시민을 박살 내는 지금의 행동이 옳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그 낯짝을 한번 더 쳐다보시지요. 지금의 진압 풍경을 보면 이건 과잉진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총이라도 쏘시겠습니다 그려.
  그리고 현재의 시위가 국민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성 있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생각하신다면, 당신들의 현실적 위치로 인해 불가항력으로 진압을 해야 한다고 해도 그 움직임에 있어서 경찰 본분의 역할인 시민의 안전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경찰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한 일을 하라고 당신들과 같은 조직을 국민 세금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당신들 보고 명령 불복종하고 징계받으라고까지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 상의 문제를 감추고 어떻게든 정당화시키려는 구차한 변명은 정말 우습습니다. 만약 인터넷과 디지털기기들이 없었다면 일방적으로 불법 폭력시위로 몰아갔을 당신들의 뻔뻔함을 생각하면 이가 갈립니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그따위로 호도당하면서 당신들의 밥이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오늘 저녁에 갑자기 많은 비와 함께 우박이 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에서 지진이 발생하더니 이제는 6월에 우박이 내리네요. 물론 자연재해 자체까지 이명박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그 자연재해가 이명박 정부와 연관되어 설명되는 게 자연스러운 지금의 현실이 바로 당신들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라는 것을 제발 직시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새벽까지 있다 집에 오니 몸살이 났습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더군요 -_-a 하루 푹 쉬고 내일 또 시청으로 출근해야겠습니다. 진짜 이명박 씨 하나 때문에 수만의 시민들이 잠도 편하게 못 자는데, 그냥 대통령직에서 그분이 빨리 물러나는 것이 국가경제와 국민 정신건강 이익이 더 크므로 더욱 '실용'적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p.s. 새벽에 잠시 친구 집에 들렀다 버스를 타서 나왔는데 경찰버스가 지나가더군요. 밖에서 살짝 보니 안의 전경들은 자고 있는 듯했습니다. 전경분들 밤새도록 고생하셨습니다. 방패 휘두르며 뛰어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전경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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