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7일 촛불집회 후기
이제 집에 왔네요. 피곤합니다. 맨날 광화문 갔다 왔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시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쓰려고 자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꼭 써야겠기에 자기 전에 한마디 쓰고 잡니다. 피곤하니까 두서없지만 간단하게 작성할게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놀랐어요. HIC인가 HID인가 하여튼 그 단체가 선점했다가 물러난 시청 앞 광장부터 광화문까지 사람이 바글바글. 경찰 추산 5만명? 경찰 채용할 때 적어도 수학시험은 보지 않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어쩌면 시력이 관계없는 것일 수도.
전경버스와 시위대 사이에 광화문역 출구가 있었는데, 그 출구 가장자리 높은 돌에 명당자리를 잡고 앉아 편하게(?) 시위를 볼 수 있었어요. 좀 추웠지만, 여하튼 거기 있으니 버스 위에 올라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경들 모습도 잘 보였어요. 근데 전경들이 왜 다 마스크를 쓰고 이름표를 가렸는지는 모르겠음. 여름 감기가 유행이라 그런가 -_-
사람들 버스 열심히 끌어내더군요. 참, 버스 끌어내는 모습 자체가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불쌍한 전경들 밀어 두고 산기슭 청와대에 숨어있는 대통령 각하를 생각해보고, 사람들에게 불법시위를 강요하는 현행 집시법과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어쩌겠어요. 손발 다 묶어놓고 자기 마음대로 관광하겠다는데, 저항하는 행위는 폭력적이니까 나는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어!라고 하며 관광당하는 건 좀 웃기잖아요. 예가 너무 자극적인가요? 지금 상황이 굉장히 자극적이고, 부가로 제가 잠이 심하게 부족한 상태라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뻘글이잖아요.
집에 와서 보니 지금 진압이 또 시작되었다네요. 전경들이 소화기를 분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염병이 보이지도 않고, 방화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데 항상 소화기는 들고 다니네요. 자나 깨나 불조심 정신, 칭찬할만합니다. 촛불도 불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인가요.
아, 그리고 도중에 전경 한 명이 끌려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들리는 말로는 시위대가 버스를 끌고 나오는 것을 막다 붙들렸다고도 하고, 버스를 당기는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끌려 나왔다고도 하네요. 다행히 주위 사람들이 '풀어줘'를 외치고, 붙잡았던 사람들이 다시 전경들 쪽으로 데려갔으니 별일 없이 풀어줬을 듯합니다. 새벽에는 전경들에게 김밥이랑 물도 줬다네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거기 제 돈도 있으니까요. 꼴랑 만원이기는 하지만, 자취생 입장에서는 큰돈이에요 ㅠㅠ 아 그리고 물병은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저번처럼 시민들 쪽으로 투척하시지는 마시고요. 저번에 제 머리 앞으로 쌩하고 날아가는 물병 때문에 저 한동안 얼었었어요. 목마르다고 외친 적도 없으니 마시라고 그리 있는 힘을 다해 던지지는 않으셨겠죠.
힘드네요. 아마 오늘도 학원을 빠지게 될 것 같아요. 지금 꽤 많이 빠진 상태인데, 걱정되네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현실상에서 많은 피해를 보실 거라고 생각돼요. 사실 이명박 씨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어서 생기는 이 막대한 손실들이 지금 정부의 새로운 정책으로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이익보다 더 클 것 같아요. '실용'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공손하게 물러나시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일 듯해요. 물론 '시장'에도 이익이고요. 사실 취임 100일이 조금 지난 현 정부는 믿기지는 않지만, 레임덕이라고 봐도 될 듯해요. 앞으로 정부에서 펼치는 새로운 정책은 거의 무조건적인 반발심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고, 사회적인 토론과 합의(또는 강제적인 설득 또는 묵살, 진압)에 들어가는 비용도 엄청나게 크겠죠.
마지막으로, 광화문에 나와있는 사람들이 폭도인가요? 세상에 어느 나라 폭도가 이렇게 온건한 폭동(?)을 벌이는 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정도의 '폭도'를 취임 3개월 만에 거리로 불러낼 수 있는 이명박 정부는 분명 어딘가 어긋나 있어요. 그렇죠? 사실 이것도 생각해보면 재주예요. 어떤 나라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자기 지지율을 20% 밑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10~20만명의 국민을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오도록 할 수 있을까요.
……제발 잠 좀 자자고!! 나 좀 재워달라고!!! 내가 얼마나 게으른데 귀찮게 왜 자꾸 거리로 불러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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