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게임넷 에버 스타리그 2008
어제 EVER 스타리그 2008을 보았습니다. 스타리그를 꾸준히 챙겨보지는 않지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아직 매력을 느끼고 있고 또 좋아라 하기 때문에(물론 잘하지는 못합니다 -_-;) 가끔 생각날 때마다 쳐다보고는 합니다. 어제 같은 경우는 결승전에 박성준 선수가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생각나서 보게 된 경우입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세 종족 중 저그를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마재윤 선수의 부진 이후 딱히 저그 쪽에서 그 정도로 두각을 드러낸 선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결승전에 저그가 갔다는 말이 저를 VOD 서비스 시청으로 이끌어버렸네요 ㅋ
별 쓸데없는 잡담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혹시라도 검색을 하고 들어오신 분들이 미리 경기 내용을 알아버리게 될까봐였습니다 -_-a 경기가 열린 지 삼일이나 지났고, 이제 관심 있는 웬만한 분들은 다 경기를 보셨을 테니 이제 마음 편하게 경기 내용으로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박성준 3 : 0 도재욱
3:0 대승!!!!!!!!!!!!
박성준 선수 3회 우승으로 골든마우스 획득!!!!!
아, 너무 짜릿하네요. 경기를 보는 내내 감탄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종족인 저그를 저렇게 멋지게 운영하는 모습이 이 기쁨을 배가시켜 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만, 박성준 선수의 감각과 실력 자체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물론 제 것은 아닙니다만) 골든마우스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실력이었습니다. 아니 이 정도면 당연히 골든마우스를 가져가야 되는 실력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이제부터 밑의 글에는 각 경기의 세부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직 경기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살짝 건너뛰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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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기는 오델로에서 열렸습니다. 프로토스가 저그보다 전적에서 앞서는 맵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박성준 선수가 5드론을 준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블넥을 시도하려던 도재욱 선수는 1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박성준 선수의 본진 정찰을 하자마자 더블넥을 포기하고 포지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성준 선수는 6저글링으로 7시 방향 도재욱 선수의 본진에 난입, 워프되고 있던 포톤캐논을 공격 시도하였지만 도재욱 선수의 프로브 컨트롤로 인해 공격이 실패했지요. 하지만 앞마당의 파일런과 포지를 부숴버리고 멀티를 저지시킵니다.
그 해결책으로 도재욱 선수는 3시 몰래 게이트로 질럿찌르기를 시도하려고 하지요. 박성준 선수의 저글링이 그 부분을 이상할 정도로 늦게 보는 바람에 (저주받은 시야 ㅠㅠ) 도재욱 선수에게 운이 터지나 했습니다만, 결국 무산되고 맙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박성준 선수는 5드론 이후 저글링을 더 이상 뽑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흔히 5드론은 초반 전략이고, 후반을 도모하는 전략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박성준 선수는 6저글링 생산 이후 드론을 확충하여 자원을 축적하여 두었고, 정찰을 온 도재욱 선수의 프로브가 본진에 들어가자 멀티 쪽 해처리를 레어로 변태하고 프로브를 잡아버려 도재욱 선수는 끝까지 박성준 선수의 자원 상황과 테크 상황을 눈치챌 수 없었지요. 결국 갑자기 날아온 뮤탈리스크를 방어할 수단이 본진의 포톤캐논 하나뿐이었던 도재욱 선수는 마지막 발끈러시를 가고 말지만 결국 GG를 선언하고 맙니다.
뭐, 그래도 1경기는 꽤 자주 보이는 저그의 모습 중 하나이죠. 트로이에서 열린 2경기는 예상을 뒤엎는 경기였습니다. 5시에 위치한 박성준 선수는 무난한 빠른발업 저글링 테크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고, 1시에 위치한 도재욱 선수도 무난한 프로토스의 초반 본진 빌드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재욱 선수가 드라군을 뽑아 본진을 살펴보는 오버로드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오버로드가 본진 외곽으로 도망가려 하다 다시 본진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 움직임은 원래 '어차피 죽을 거 그냥 본진이나 더 보다 죽자'라고 많이 시도되는 움직임이죠. 그런데 오버로드가 죽자마자 갑자기 드론 다섯 기가 한 줄로 박성준 선수의 본진을 나오더라고요. 앞마당은 아직 완성도 안됐는데… 아니 그전에 저 타이밍에 저그는 앞마당이 완성됐다고 일꾼을 본진서 빼지는 않잖아요. 네, 그 드론으로 밀치기를 통해 입구를 뚫어 저글링을 난입시켰습니다 ㄱ- 오버로드가 죽기 직전에 도재욱 선수의 본진 미네랄의 시야를 확보하고, 그 미네랄을 클릭하여 드론밀치기를 시도한 것이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녹차를 마시면서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드론밀치기로 입구를 막고 있던 질럿이 밀려나고 저글링이 난입하는 것을 보며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차 따르고 있던 걸 잊어버려서 그만 책상에 흘러버렸습니다 쩝쩝. 중간에 깜짝 놀란 얼굴의 김택용 선수와 절망스러운 표정의 박용욱 코치의 얼굴도 나왔습니다만, 정말 저 타이밍에 저런 기발한 선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박성준 선수가 '투신'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데에는 그 선수가 공격할 기회를 잡으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 이런 모습이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투신의 가공할 포스가 느껴지는 경기였다고 생각되네요.
안드로메다에서 열린 3경기는 두 선수 모두 자신의 실력을 잘 발휘하면서 싸웠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도재욱 선수가 중반 이후 커세어로 제공권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게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생각되네요. 박성준 선수의 스컬지를 통한 커세어 요격과, 타이밍을 잡아 뮤탈 + 스컬지로 커세어를 절반 이상 떨어뜨리는 바람에 도재욱 선수는 박성준 선수의 멀티 견제를 거의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게임 끝날 때까지 그나마 성공한 견제가 본진 4다크드랍으로 스포닝 풀과 울트라리스크 케이번을 날린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그리고 박성준 선수는 정말 그 투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흔히 '저그다운 경기'는 저그가 스타크래프트의 스토리 라인에서와 같이 압도적인 물량으로 죽어도 죽어도 끝없이 전진하여 상대방의 병력을 전멸시키는 경기를 가리키고는 하는데, 정말 저그다운 경기였습니다. 저그의 속성을 완벽히 재연해 낸 경기에 박성준 선수의 공격적인 성향과 견제를 허용치 않는 치밀한 컨트롤은 맵 전체를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게다가 상대 선수인 도재욱 선수도 굉장히 잘해주었던 것이 이를 더 돋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글링 + 히드라 + 러커 + 가디언의 조합을 엄청난 템플러 컨트롤과 물량으로 저지시키는 도재욱 선수도 분명 훌륭한 선수입니다. 단 그 숨 가쁜 저지 후 또 동급의 저그 병력이 밀려들어서 그렇죠 ^^; 나중에 울트라가 부대단위로 뛰어다니는 모습에는 정말 식겁했습니다. '다크스웜도 필요 없다. 그냥 나가서 죽고 와라. 그 뒤에 또 그만큼 보내줄 테니'라는 박성준 선수의 경기 운영은 정말 저그 플레이어로서 가슴 뛰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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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POS에서 특유의 강한 공격성과 컨트롤로 당대의 정상급 선수를 잡아내며, 암울했던 저그 선수들의 시대에 당당히 최초 저그 우승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박성준 선수가, 전적에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팀 이적 문제와 연봉 문제로 여기저기 방황을 하다 지금의 STX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아는 저로서는 오늘의 승리가 더욱 감격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요즘은 예전만큼 스타리그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흔히 '올드 프로게이머'라고 불리는 이런 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이 더욱 반갑기도 하고요 ㅋ 개인적으로 팬은 아니지만 예전 이윤열 선수가 최초로 골든마우스를 거머쥘 때에도 좋았는데, 박성준 선수는 정말 감동의 물결 그 자체네요. 오랜만에 다시 본 투신의 경기는, 그전에 가지고 있던 공격성과 물량, 컨트롤 외에도 한 번에 상대에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타이밍을 찾아내는 승부사의 모습이 더해져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싸움을 특유의 스타일로 맞닥뜨려 뒤집어 엎는 것에서 투신의 개성을 찾았다면, 이제는 아예 무리한 상황을 허용하지조차 않겠다는 강렬한 포스가 투신 그 자체로 느껴지네요. 여하튼 박성준 선수의 훌륭한 경기를 봐서 너무 좋았습니다. 박성준 선수 우승 축하드립니다~
p.s. 다음 팟플레이어로 봤는데, 5경기까지 메뉴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3:2로 이겼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3:0으로 끝났네요. 굳이 경기가 있더라도 5경기까지 메뉴를 만들어 둔 팟플레이어의 센스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주로 나중에 재방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곰플레이어에서는 경기 수가 나오는 바람에 마지막 경기는 결과를 알고 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ㅋ 5경기까지 간 경우면 어쩔 수 없지만, 이런 센스 있는 낚시 너무 좋습니다.
p.s.2. 이제 우리 진호횽아도 우승 한번 하실 때가 된 것 같은데…… 횽 나 기다리기 힘들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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