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감 선거결과가 나왔네요


   교육감 선거가 끝난 지도 며칠이 지났습니다. 선거장에 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이 와서 선거율이 꽤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처참하군요. 사실 그날 자정 결과를 보자마자 바로 분노의 포스팅을 시작했으나, 그냥 다 지워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이고, 제도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에 대해 쭉 쓰다가 피곤해서 잠들어버렸는데,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니 다 부질없는 헛소리더라고요. 괜히 방학 숙제하는 학생들이나 도와줄 한심한 줄글을 쓰느니 그냥 이 답답한 마음이나 한번 털어놓아볼까 합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면 '국개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이 개새끼다 이론(論)'의 준말입니다. 그 내용은 '애초에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후보도 모르고 일부 고소득층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국민들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뽑아 둔 대표자들에게 한번 크게 당해도 싸다'라는 말이죠. 대의제에서 대표자는 국민들의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뽑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을 뽑은 결과로 한번 고생을 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물론 형식적인 대의민주주의 하에서는 옳은 말이나,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을 '계도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는 지극히 계몽주의적 발상의 연장선에 있는 소리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지난 대선 때부터 저번 총선, 그리고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를 쭉 보고 있자니 적어도 국개론이 왜 나왔는지 그 이유에서는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애초에 초등학교부터 경쟁을 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진 사람을 서울시의 교육 총책임자로 앉혀놓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이거야 저의 개인적인 교육관과 정치관이므로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강남과 서초에서 이번 당선자에게 몰표가 나온 것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지역 이기주의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역시 민주주의에서 보장된 권리이므로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종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음해가 판을 치던 선거전이었지만 이 역시 이번 선거만의 문제만은 아니므로 크게 짚고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전체 선거 시설의 30%가량이 개신교 교회에 있었고, 수요일의 선거가 개신교의 수요예배에 참가한 분들에게 훨씬 높은 접근성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현실적으로 선거소 확보가 어려운 일이라는 점과, 기본적으로 선거 참여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기초하기 때문에 저런 유인이 이번 선거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아도 15.4%의 선거율은 말이 되지 않는 결과입니다. 비록 선거일인 7월 30일이 법정공휴일이 아니어서 직장인들의 참여가 힘들었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휴가기간과 선거일이 겹친다고 해도 이건 다 핑계일 뿐입니다. 일단 저 위의 요소부터가 서로 겹치잖아요. 30일에 휴가가 아니라 평소처럼 직장에 다니시는 분이었다면 공휴일이 아니라 시간이 없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서울 시민 유권자의 85%가 새벽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하는 격무의 직장에 근무한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잖아요? 만약 휴가기간이었다면 놀러 가느라 못 찍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죠. '그럼 일 년에 한 번 있는 휴가를 포기하리?'라는 분은, 만약 선거에 관심만 있으셨다면 미리 선거를 하는 거소투표라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핑계가 되었어도 15.4%의 선거율은 서울시민들의 무관심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얘기죠.

  사람들은 이렇게 대표자 선출에는 무관심하면서 매일 정부만을 욕합니다. 그다지 좋아하는 비유는 아니지만,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경우 임명직 공무원들이 일하는 행정부는 두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보조·집행하는 기관이고, 실질적으로 국가가 어떻게 움직일까를 정하는 기관은 선거에 의해 뽑힌 선출직 공무원들입니다. 국회의원, 대통령, 지자체장, 지방의원 그리고 교육감 같은 직위 말입니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대통령이나 지자체장같이 행정부 소속의 선출공무원이 중복된다는 느낌이 드네요. 여기서는 행정부의 대표라는 쪽보다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비중을 더 두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ㅋ). 그런데 눈에 모이는 움직이는 모습만 가지고 욕을 바락바락 하지, 막상 그것이 왜 그렇게 움직이게 되었나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모양입니다.

  물론 대의제의 한계상 국민의 의사가 모두 정책에 반영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건 뭐 어쩌고 저쩌고 말만 하지 막상 자신의 의사를 비슷하게나마 반영해 줄 사람을 뽑는 선거에는 참여를 하지 않으니 말이죠. 없는 시간 쪼개서 촛불집회 나가는 것보다 하루 선거에 참여하는 게 훨씬 압도적인 정치 참여 과정일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선거율이 나왔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번 포스팅에서 우리나라가 이제 직접민주제로의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성선설과 사회계약,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썼었는데, 아무래도 저의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접민주제는 무슨 직접민주제입니까. 간단한 대표 선출조차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요.


  그냥 답답한 마음을 주절주절 글로 써 보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한탄만 늘어놓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어쨌든 점점 여러 방향으로 개선되어 나간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장기 개선이 도대체 언제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날지는 도무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지만, 케인즈 아저씨의 '장기에는 우리 모두 다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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