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체변화에 대한 단상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에조차 너무 더워서 자다 말고 몇 번씩 일어나 에어컨을 켜고 잠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제가 스스로 컴퓨터로 작성했던 글을 모두 보관하고 있는데, 그걸 죽 읽고 있다 보면 정말 한 사람이 작성한 글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거든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무언가 결벽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때부터 계속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성공적으로 이동·보관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뿐입니다 ㅋ 글뿐 아니라 각종 짤방, 유틸리티, 사진 등도 모두 보관하고 있거든요. 실수로 동생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_-을 날려먹은 것을 제외하고 말이죠 ㅠㅠ 그 점은 지금도 동생에게 굉장히 미안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글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글들은 자료에 대한 주관 없이 단순히 자료를 취사선택하여 나열한 것이 대부분이네요. 물론 실기평가(지금의 수행평가입니다 ㅋ)용으로 작성했던 글이 대부분이니 그렇겠지요. 물론 어떤 자료를 선택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작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시작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단지 실기평가 숙제 제출을 위해 글을 작성했었죠.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Ctrl+C, Ctrl+V로 작성한 향기가 강하게 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중학교 때 썼던 글부터 조금씩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했었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낯 뜨거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수준이 높다는 건 아닙니다 -_-a) 그때 가지고 있던 시야가 정말로 좁았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일단 수행평가(이때부터 수행평가라는 말을 썼죠 ㅋ) 때문에 무언가 글을 쓰기는 써야 하는 상황인데, 부족한 자기 실력으로 쓰자니 아무리 봐도 이상한 글만 나왔었겠죠. 무언가 있어 보이게 글을 쓰기는 해야겠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상투적인 표현과 남의 글에 나온 것이 분명한 표현을 열심히 들고 와서 글을 썼던 모습이 보입니다. '아 이게 내 생각과 비슷해!' 이런 느낌이면 그 표현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야 할까요. 결국 이는 글에 어울리지도 않는 치장만 잔뜩 걸쳐버린 결과를 가져왔지만요 ㅠㅠ
고등학교 때의 글부터 제 주관이 점점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과 같다고 말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그때의 글에서부터 '아 내가 쓴 게 맞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그때의 글과 지금의 글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 그때의 글들이 지금보다 직선적이고 단정적, 공격적이며 확신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저를 지금의 제가 평가한다는 건 약간 우습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때가 서서히 세상에 대한 사고가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던 시기라 그런 식으로 글을 썼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마치 천둥벌거숭이처럼 이것저것 찔러보는 게 가능해 보이는 건 모두 찔러보던 그때의 글은, '일단 한번 까고 보자'는 심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합니다.
하지만 얕고 우습게 보이는 그때의 글들을 죽 읽어보고 있자니 그때의 제게 부러운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처럼, 그때의 글에서는 자신감이 정말 크게 넘쳐흐르고 있더라고요. 지금의 제 글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모습이기에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대학교에 와서 저보다 훨씬 사고가 깊은 여러 학우들을 만나고, 이것저것 잡다한 책 또는 글을 많이 읽어가면서 저의 한심할 정도로 낮은 사고능력의 수준에 기가 죽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남들처럼 열정적인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그때 썼었던 글에서만큼은 고등학생다운 열정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글은…… 글쎄요 ㅋ 지금의 제가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어제 찍은 사진을 오늘 보고 무엇이 변했는지를 알아맞힐 수는 없잖아요. 분명 지금이 어떻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 싶은가라는 생각은 있어요. 우선 지금보다 글을 더 체계적으로 쓰고 싶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네요. 지금은 부족한 논리적 능력과 상실된 자신감을 채우기 위해 글 내의 근거나 수식어를 두텁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게다가 개인적으로 긴 문장을 굉장히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위와 같은 두터운 글과 결합되어 엄청나게 지루한 글이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걸 저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마음은 더욱 간절합니다 ㅠ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는 다르게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함께 게임과 술로 보내버린 결과, 여전히 저급한 수준의 사고방식은 그대로군요 ㄲㄲ 그 와중에도 한두 권 읽었던 책들이 준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해 보면, 책을 더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앞으로 더 읽어야겠죠 -_-a
원래 블로그에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쓰지 않습니다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서 몇 줄 적어보게 되었네요. 사실 이런 형태로 작성된 글이 몇 편 더 있기는 합니다만, 공개하기 쪽팔려서 하드에 저장만 해 두고 비공개로 돌려버렸어요 ㅋㅋ 예전부터 그래왔었지만, 제 스스로 글에 관용어구와 수식어로 멋을 부리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쓴 글들은 은근히 멋을 부리게 되잖아요. 그런 글을 스스로 공개하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마치 새벽에 일어나 잠결에 팬티만 입고 현관 앞에 있는 우유를 가지고 들어오기 위해 잠시 문을 열었는데, 그 잠깐동안 사람(그것도 비슷한 연령대의! 호감이 가는! 동성이 아닌 이성!)을 몇 명이나 만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될까요. 여하튼 그런 느낌이에요 ㅋㅋ 다행히 이 글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공개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이렇게 열심히 몰입해서 썼는데, 하드디스크 구석으로 글을 집어넣는 결과가 나오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 무엇보다, 포스팅을 다시 해야 하잖아요. 어쨌든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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