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의 대화 질문 있습니다!를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9월 9일 10시부터 100분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를 보았습니다. 평소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이나 비전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엄청 싫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혹시나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저 대화를 바라볼까 걱정되어서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토론 내용을 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단순히 '까기 위해 TV를 본 경우'였다면 질문 하나하나에 전부 태클을 걸 요소도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_-;; 그렇게까지 비판적으로 TV를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겨우 100분에 불과한 방송 시간에 나온 질문은 크게 잡아 21개이고, 추가질문까지 합치면 서른 개가 넘는 질문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 대해 충분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는 점과, 여러 가지 예민한 사회적 현안 또는 정책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가정하고 이 토론에서 느낀 점을 써 내려가볼까 합니다.


1. 방송 자체는 훌륭한 말의 향연이었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역시 민감한 질문과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조금 민감했던 질문이라고 할 만한 것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여학생의 질문과 그 뒤에 이어졌던 전문가 패널의 질문이었습니다. 과도한 법 집행과 표적수사 등으로 인한 공안정국 조성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답은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존중하지만 엄정한 법 집행은 이루어져야 한다',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보복성 차원으로 공권력을 쓰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굳이 대통령 각하가 나오셔서 말씀하시지 않아도 이미 어청수 경찰청장 및 수많은 국회의원 분들이 계속했던 말이죠. 답변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는 물음에 '돈을 많이 벌면 됩니다.'라는 답변을 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이죠. 겨우 이 정도의 이야기를 하려고 이 많은 공중파를 낭비했나라는 생각조차 듭니다.

  다른 현안 역시 비슷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누가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세금 낮추고 혜택은 높여준다는 걸 싫어하겠습니까. 굉장히 상투적인 질문에 모범답안을 제출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TV토론의 시간적인 한계가 있고, 구체적인 답변을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한 가지, 중간중간 그래도 조금 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노력은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 정부가 앞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정부라 얼마나 저 말들이 왜곡된 해석을 가해지지 않고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2. 정책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이번 토론을 보며 식겁했던 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몇몇 정책들의 스케일이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도심의 주택을 재개발, 재건축하고 전국적으로 사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립형 사립고를 모두 설치하며 농촌의 수익창출원을 재창출하고 기업에게 손해가 없도록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부가 보조하겠다는 등의 엄청난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정책을 편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게다가 이걸 감세를 이루어가며 동시에 시행하겠다니…… 뭐 내가 그럴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셨으니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으신 것이겠지만, 어떻게 저걸 시행하실지가 정말 궁금하네요. 공기업을 다 팔아서 재원을 마련하실 생각인가…… 모르겠네요. 저 같은 평민과는 다르게 이명박 대통령은 하늘을 날아다니실 수 있는 슈퍼맨일 수도 있잖아요……


3. 주장에 몇 가지 모순점이 있다.

1) 먼저 부동산 가격 안정화 방안에 대한 발언이 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현재 주택가격에 거품이 많이 생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택원가 미공개, 선분양제, 도급제, 시장독과점 등을 통한 주택회사들의 영향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수요자들은 복지의 개념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을 도심에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확보하여 공급하고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화에 맡긴다라…… 대통령이 좋아하시는 '시장'의 개념이 독과점시장이었을까요. 아니면 설마 지금 주택시장이 공정한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장기적으로는 투기의 개념으로 쓰일 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은 조금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그런 예언이라면 할 수 있어요…… 장기에는 결국 다 죽을 거라는…………… 지금 누가 미래학자 이명박씨를 불렀습니까. 물론 정책의 장기적 효과를 예측하고 정책을 짜는 게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20년의 미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짜는 게 가능할까요. 쩝, 역시 우리 대통령각하는 슈퍼맨이었나 봅니다.

2) 중소기업을 주로 지원하고, 대기업은 규제완화밖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말은 정말……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에 규제완화를 베풀어주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혜택이죠 -_-;; 물론 예전 미국에서처럼 독과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을 강제로 해체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가 그 부작용을 겪자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시행해서 안 그래도 낮아진 법인세를 단지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라는 막연한 경제원론적 근거만 가지고 더욱 낮추는 건 좀 근거가 빈약하잖아요. 단지 그 감세를 내년으로 미루었다는 게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생각하는 근거가 된다고는 절대 볼 수 없지 않을까요.

3)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다, 결국 이 방안이 기업의 '이해와 아량'이 필요한 것이라는, 전혀 시장적이지 않은 말씀을 하시더니 다시 정부정책으로 기업에게 손해가 없으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만들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결말은 '어쨌든 경제가 살아야……'로 끝났습니다. 이를 정리해 보면 결국 '경제가 좋아지지 않는 한 해결책이 없다'라는 말이 되는군요. 말로는 엄청난 배려를 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현재상태로 해결책이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대표, 정부, 기업 간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비정규직 대표가 인정되면 비정규직이 지금처럼 협상력이 없겠습니까 -_-;; 비정규직 노조는 노조로 인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말은 참 쉽게 하시더군요. 게다가 이랜드같이 비정규직문제가 장기화된 곳에 가 볼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또 3자가 들어가는 것보다 양자가 '순수하게' 타협하면 길이 있지 않겠냐는 말을 하셨습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해결할 의지도 방법도 없고, 거기에 괜히 말려들어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라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이명박정부에 계속 지적되어 오던 소통의 문제 역시, 이명박 대통령은 기존의 방침을 그대로 고수해 나갈 것이라는 확인을 해 주었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반대하는 사람의 말보다 말이 없는 국민의 말을 듣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말, 얼핏 들으면 굉장히 좋은 말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행위에 가치판단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자신의 가치관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사람들의 여론은 여론으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이 됩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소통'역시 초기의 '오해'가 있었을 뿐이고 지금까지 잘 되어 왔다고 말씀하시고 있으니…… 아 암담합니다. 제 글도 이명박 대통령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니 들을 필요가 전혀 없겠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_-;;;; 지금까지도 여러 조직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왔고, 옆에 쓴소리 하는 사람도 많았답니다…… 에고고고고고고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 있어 거슬렸던 부분이 있었으나, 일단 TV방송이었음을 감안해 어느 정도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다소 모호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가 곡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지나치게 '지적을 위한 지적'만 하다가 신나게 까이기는 싫거든요 -_-;; 답답함을 뚫어주기 위해 우리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서 귀한 시간을 내주시고, 패널분들도 무려 100분이나 (그중 80명은 결국 들러리 처지가 되었지만요……) 나와주셨는데, 어째 방송을 보고 난 제 마음은 더 답답해질까요 ㅠㅠ 단지 이번 방송에서 하나 좋았던 점이 있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참 재미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정도네요. 아마 사석에서 아무 이해관계없이 만났다면 매우 호감이 가는 분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귀여움과 호감을 유발하는 부분을 가지고 계시고, 적정 수준의 유머감각과 소탈함도 지니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사석에서만 만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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