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문제


  최근 PD수첩에서 방영된 내용을 통해 역사 교과서 이슈를 알게 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역사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는 압력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그러한 주장에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정권이 바뀌면 그 정권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교과서의 서술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가 역사교과서 편집에 논란을 가져오는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는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우리가 해석한 내용이 수록된다는 점에서 과거 사실에 대한 '해석'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해석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번 논란은 그 사실관계까지 학문적 연구 없이 왜곡, 축소를 시도한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TV 프로그램 내에서 '광복 초기에는 친일파의 정의가 불명확하므로 친일파를 처벌하지 못했다는 언급은 부적절하고, 좌편향된 역사교과서에서 이를 왜곡 기재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언급하는 '좌편향'이야말로 현대 우리나라 사회에서 더욱 정의가 불분명한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친일파에 대한 정의 운운도 사실 왜곡인 게, 단적으로 헌법 내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부분만 생각하여 보아도 3.1 운동의 취지에서 친일파의 기본 정의가 가능하고,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친일파가 살던 시대와 가까웠던 시절, 소수의 소급입법 사례 중 하나인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참고하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좌편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국정교과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교과서가 북한의 입장인 사회주의 사관을 대변하는 관점에서 쓰인 것이 좌편향이라고 합니다. 자, 그럼 사회주의 사관은 무엇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의 하부 구조가 변화하면 그것이 상부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와 사회의 변동이 실현된다는 관점입니다. 농업 기술의 발달이 사회의 소유 구조를 가져오고, 사적 소유의 확대로 계급제가 생겨나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 봉건 국가로의 사회 변환이 일어나고, 지속적인 상공업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과 자본이 증가하여 이를 소유한 계층에 의한 시민혁명으로 근대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는 식의 서술입니다. 물론 북한은 사회주의를 공식적으로 버리고 민족주의적 시각이 들어있는 주체사상이 주요 사상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기에 근본 서술의 틀은 저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 구조가 변화하는데, 조선민족은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러한 변화의 최첨단에 서 있었고 계속 선구적인 발전을 해왔다는 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봐야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국사 교과서가 집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국사 교과서를 바라보면, 지독할 정도로 계몽주의·민족주의적 시각이 배어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예를 들어보아도, 아직도 고대 중국처럼 국가를 가족의 확대 개념으로 서술하는 부분도 있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며, 우리의 선조가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했다는 내용 등을 바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국가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궁극적인 절대선과 같이 서술하는 수준인데, 이 정도의 논지라면 오히려 우편향 교과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은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친일파에 대한 위의 주장이 정말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친일파'에 대한 정의를 지금 빨리 하던지, 역사교과서 내에서 '친일파'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구성의 자료를 만들던지 하자고 해야 합니다. 친일파 정의가 되어 있지 않으니 내용을 빼자고 주장할 게 아니고요. 일단 역사 교과서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관계로 인해 일본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우리나라 독립 이후 세계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한국은 일본에 자본, 기술을 임대하여 최종생산물을 수출하는 하도급 산업의 성격이 강합니다. 따라서 한국 자본은 일본 자본과 절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하청업체 사장이 원청업체 임원에게 절대 거역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따로 말이 없어도 알아서 최대한 비위를 맞춰주려고 노력을 하면 했겠지요. 차라리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저 주장이 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어줬다는 주장 자체가 상전께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셈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부려먹는 노예들이 그에 반발하면 안 될 말입니다. 한두 번은 물리적 제제가 가능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반발이 없도록 정신교육을 하는 게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니 교과서 개정을 희망하는 것이고요. 앞뒤가 맞지 않는 교과서 개정 주장에 비해, 이 쪽은 최소한 앞뒤의 논리적 흐름은 탄탄합니다. 최근 정치 참여를 위한 정치 의사 표출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국정교과서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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