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인 이유


  엄격한 법 집행을 좋아하고, 지금 서울 각지에서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시민 및 그냥 거슬리는 시민들까지 폭력으로 진압하고 있는 걸 환영한다는 말을 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천부인권을 가지고 스스로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특정 회사가 지원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들 별 관심도 없지만 클릭 몇 번으로 동의하고 넘어가는 개인정보보호방침이나 서비스약관이 있다는 것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여도 회원이 되는 순간 그 조항은 회원과 회사 양쪽의 관계를 정의하는 엄청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회원에게 주어지는 서비스 이용이나 개인정보 보호 등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회원이 되는 것에 동의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권리가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한 비유는 되지 못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 태어나서 국민으로 인정을 받는 순간 국가에서 정의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은 자동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예전 전제국가에서 태어난 평민이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황제 이외의 모든 인간이 황제의 노예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과 같이, 서양의 근대국가 모델을 기본 틀로 만들어진 이 나라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권리들을 자동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종류가 무엇이고, 이걸 행사하는데 어떠한 제한이 있나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써 놓은 것이 대한민국 헌법입니다. 아까 예로 든 서비스 약관처럼, 헌법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고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이 계약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이 서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병사를 이끌고 들어와 이 땅에서 마음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 지배자가 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국가와 동등하게 헌법을 통해 계약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선인의 후예이기는 하지만, 이 나라는 조선과 같은 전통적 동아시아 봉건국가가 아니라 근대 서양국가와 같이 사회계약론에 따라 만들어진 나라이니까요.

  자, 그럼 그 신성한 계약서인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과 제2항을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 권리 중의 하나입니다. 민주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자신의 생각대로 누구한테 간섭받지 않고 떠들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권리는 폭력시위 진압을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굳이 우리나라가 아니더라도, 현대의 국가가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인정해주어야 하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이러한 모습과 완전히 다릅니다. 일단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저 헌법 21조의 취지를 무시하고 실질적으로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바로 위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다른 이들에게 큰 피해가 없는 한도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집회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만약 사인간의 계약에서 처음 계약서(헌법)에 쓴 내용과 실질적인 운영에 차이가 있을 경우 통상적으로 항의 및 계약의 올바른 이행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러한 계약 내용의 이행 요구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격입니다.

  나치독일이 형식적 법치주의에 기대서 국민들을 유린했듯이, 지금 정부도 헌법이라는 계약서에 담긴 기본 정신을 지키지 않고 '엄정한 법 집행' 운운하면서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허가제가 아니고 신고제니까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제도의 적용 형태와 인식 상황을 보면 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주장입니다. 단적으로 언론에서도 '신고 접수를 반려했습니다' 보다 그냥 '불허했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불허는 허가 금지라는 뜻으로,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누군가가 '허가'하여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물론 시위대가 과격해지면 폭력적으로 변질되고, 다른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손해가 발생되므로 집회 및 시위의 제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니까요. 그런데 사회적 손실 및 비효율을 방지하기 위해 언로(言路)를 봉쇄하고, 안정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형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제군주제입니다. 한 명이 주권을 가지고 국가의 모든 모든 구성원을 자의로 유린하는 사회가, 그 유린의 결과물이 무엇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과정과 목표 달성 자체만으로 볼 경우 제일 효율적인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대로라면 프랑스혁명은 나라 전체를 몇 십 년간 혼란에 빠지게 하고, 결과적으로 주위 국가들의 침략까지 불러온 극히 불안한 폭력사회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은 영국 중심의 효율적인 식민지 경영 구조를 위협하는 비경제적인 행위라 주장할 수 있고요.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자신에게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와 시위를 봉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의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헌법 차원의 합의가 없이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주장을 강제로 따르게 한다는 것과, 그 강제력에 국가 권력이 개입한다는 점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두 사람이 촛불을 켜 두고 앉아 있는데 경찰이 시위대라 주장하며 연행해 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연행 근거는 촛불이 시위용품이므로 두 사람이 시위를 하고 있었고, 이는 신고가 되지 않은 불법 시위라는 논리였습니다. 가스통은 시위용품이 아닌데 촛불은 시위용품인가를 따져 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해당 연행이 비례의 원칙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올바른 공권력의 행사와는 크게 거리가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집시법 위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행정기관의 행위가 일단 유효하니까 저렇게 자의적인 행정력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헌재의 빠른 검토가 행정부의 직권 남용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헌재에서는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네요. 과연 이 사안이 검토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줄 요약입니다.


국민은 헌법에 의해 보장된 기본권을 가진다.

지금 국가는 그 기본권을 무시하고 있다.

행정력의 과잉 행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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