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특강 참석 후기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되었을 때입니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 리더십이론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보낸 편지가 발단이 되어 노무현 대통령께서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 특강을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친구와 같이 정외과 교양수업을 하나 듣고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 노무현 대통령의 특강에 참여신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요. 현직 대통령이 대학교에서 특강을 하는 것이 최초라고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들뜬 기분으로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현직 대통령께서 강사를 맡고 계시다는 점과 경비가 꽤 삼엄했다는 것만 빼면, 특강 내용 자체는 크게 새로웠던 점은 없었어요. 물론 강의 내용 자체는 감명 깊었고, 강의도 흡입력 있게 잘하셨지만 제가 좋아하는 '참신한 내용'은 없었으니까요 -_-a

  그렇게 특강이 마무리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질문이 나왔었지요. 그런데 그 질의응답시간 도중, 갑자기 작은 소요가 생겼습니다. 한 학생이 큰 소리를 지르며 대통령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항의 내용은 질의응답 자체가 이미 짜인 각본이라는 것이었어요. 학생들이 손을 들면 사회자가 학생을 지명하여 대통령께 질문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사회자가 이미 정해진 학생들만 지명하였었거든요.

  그런 소란이 가라앉고 난 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우선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신 뒤, 이러한 강의에서 그런 방식으로 질의응답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한 발언의 사회적 파장을 고려했을 때, 질의응답을 모두 맞추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짐작되던 일이기도 했고요. 생방송도 리허설을 하는 대통령도 있는데, 저 정도는 약과잖아요.

  그런데 그러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 후, 길지는 않았지만 몇 명의 학생에게 자유로운 질문을 받았던 행동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이 서로 모르는 척 알고 있는 정해진 질의응답이었고, 또 그것에 대한 정당성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냥 간단하게 사건 마무리를 하고 정해진대로 진행을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그렇지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제시된 지적을 무시하지 않고 가능한 한도 내에서 수용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대통령으로서 그러한 진행을 할 수밖에 없는 점을 설명하고, 너무 민감한 질문은 곤란하지만 그렇지 않은 질문은 가능한 내에서 답변해 주시겠다고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신 점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강의 내용 자체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이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께서 보여주셨던 열린 자세와 솔직한 모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네요.

  노무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로 넘어가겠지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정책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중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다른 의견에 대한 열린 자세는 군사독재를 거쳐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나라가 앞으로 실질적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과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과 토론을 통해 구성원 간의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 데에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세이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글에서 이 이상의 말을 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진다고 하니, 마지막 가시는 길이나 지켜보아야겠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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